出版 |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내용은 식민지 조선의 체제 전복을 꾀한 이들이 어떤 책을 읽으며 저항의식을 키웠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신간회를 실질적으로 이끌며 《임꺽정》을 연재했던 홍명희, 주로 베이징에서 체류하며 조선 역사를 연구한 신채호, 임시정부의 지도자인 김구, 중국 대륙을 누비며 항일전쟁에 참여한 김산과 김학철의 독서 여정이 첫 번째 내용에 해당한다. 두 번째 내용은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던 가부장제에 반기를 든 여성들의 독서 여정이다.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나혜석과 김일엽, 기생이었다가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로 변신한 정칠성, 여성 노동운동의 일환으로 모성보호운동을 펼친 박원희, 엘렌 케이를 동경하여 스웨덴까지 유학을 갔다 온 최영숙의 이야기가 여기에 포함된다. 마지막 내용은 식민지 교육 정책에 저항했던 비밀독서회의 문화사이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진원지였던 성진회, 사회주의 서적을 중심으로 공동체적 책 읽기를 지향한 비밀독서회, 황민화 교육에 앞장서야 했던 사범학교 학생들의 대안교육 모색, 전시체제기에 한글을 사용할 수 없었던 세대의 책 읽기 문화 등을 아우르는 내용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독서의 정치사’와 맞닿아 있다. 독서의 정치사는 국가권력이 책 읽기에 개입한 목적과 양상을 밝혀내는 ‘위로부터의 독서 정치사’와 해방을 염원했던 이들의 독서 이야기를 담은 ‘아래로부터의 독서 정치사’로 나눌 수 있다. 지배수단의 하나로 전개된 관변 독서운동과 검열정책은 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책은 저항으로서의 독서를 지향한 이들의 책 읽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독서 정치사’를 살피고 있다. “요컨대 강성호 선생의 책은 20세기 한반도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천궁도 전체를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명된 다양한 사상가와 책의 목록들 자체가 풍부한 지적 재료이기 때문에 많은 흥미와 지적 자극을 준다. 나름 활발하지만 다소 산발적으로 쌓여가고 있는 지성사·독서사·문화사의 연구자들은 다 이 책 덕분에 감발하게 될 것 같다.”(천정환, 추천사) ‘혁명과 독서’, 저항으로서의 독서를 지향하는 이들의 책 읽기 문화사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사회의 변혁, 즉 혁명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제기되었고, 관련된 책들도 많이 나온 편이다. 그간 한국 근대 문화사 연구에서도 ‘혁명과 독서’에 대해서 언급은 되어왔지만 본격적으로 검토한 연구는 드문 편이었다. 이 책은 억압의 시대를 살았던 식민지 청년들, 지식인들이 어떤 책을 읽고 ‘혁명’을 꿈꾸었는지 본격적으로 파헤친 역작이다. “한국 근대 문화사 연구에서도 ‘혁명과 독서’는 언급되어왔지만 본격적이고도 세밀하게 검토한 연구는 드문데, 강성호 선생은 이 과제에 도전하여 새 길을 냈다.”(천정환, 추천사) 저자가 밝혔듯이 이 책은 ‘아래로부터의 독서 정치사’를 다루고 있다. 곧 저항으로서의 독서를 지향하는 이들의 책 읽기 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한 무기, 나아가 낡고 모순된 세상을 돌파하기 위한 무기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당시 청년들이 꾸렸던 비밀독서회의 활약을 파헤친 부분은 저항으로서의 독서가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은 소위 불온서적을 돌려가며 읽고, 토론하며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1926년 순종 장례식을 기해 일어난 6·10만세운동은 비밀독서회를 바탕으로 조직된 학생 단체들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었다. 또 비밀독서회는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했고, 광주에서 시작된 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책을 읽으며 갖게 된 생각과 의문을 이야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청년들을 일제의 식민 지배에 대항하도록 만든 것이다. 조선의 페미니즘의 계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유의미한 특징이다. 책에는 가부장제에 반대하고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새로운 주체로서 여성 독서가들이 소개되어 있다. 가부장제와 억압의 시대를 모두 극복해야 했던 여성 독서가들에게 책은 매우 큰 역할을 했고, 저항가로서의 삶을 살도록 만들었다. 특히 기생에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부르짖는 혁명가로 변신한 정칠성, 모성이 신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동등한 환경에서 노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 모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박원희, 스웨덴으로 유학을 갔다 온 최영숙, 해방 전후 《조선요리제법》이란 베스트셀러 저자였던 방신영 등의 이야기를 읽으면 책과 혁명, 책과 삶의 관계를 더욱 깊이 성찰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가 작동되고 있던 식민지 조선에서 자유연애론을 펼친 나혜석과 김일엽의 이야기 또한 책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파악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더 많은 여성 독서가들에 과한 자료를 찾지 못한 게 아쉽다고 밝힌다. 저자는 남성 독서가들의 독서 이력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여성 독서가들의 독서 이력을 찾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고 말한다. “홍명희·신채호·김구는 자신의 독서 이력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반면 여성 독서가들에 관한 이야기는 찾기도 쓰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남긴 말과 글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6~7쪽) 그렇지만 여성들의 독서 이력을 찾기 어려웠다고 해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독서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들은 남성 지식인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 지성사의 가부장적 구조” 때문에 여성들의 활약이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 최고의 다독가, 홍명희 독서는 여러 방식으로 전개된다. 한 권을 부여잡고 자세히 읽거나, 여러 책을 동시에 읽거나, 서로 돌려가며 읽거나. 조선 최고의 다독가로 불리는 홍명희는 ‘완독(完讀, 끝까지 모두 읽는 방식)과 남독(濫讀,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마구 읽는 방식)’의 책 읽기를 추구했다. 홍명희는 일단 책을 집어 들면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밤새 책을 읽기도 했고, 누군가가 방해를 하면 화장실에 가서도 책을 읽었다. 워낙 다독가인지라 잡지를 비롯해 유교 경전, 중국 고전소설, 일본 문학, 러시아 문학, 유럽 문학, 자연과학, 사상서 등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 홍명희의 칼럼을 묶은 《학창신화》에는 그의 지적 여정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가 잘 드러나 있다. 조선시대 민중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다루어 역사소설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는 《임꺽정》도 홍명희가 여러 방면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13년간이나 연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글쎄, 현대 여성을 통 모르니까 답답하더군요. 그래서 간접적 지식을 얻으려고 모윤숙씨 연애론도 읽고, 허허 다른 분들의 소설도 읽지요.”(37쪽) 저자는 홍명희를 ‘남성 페미니스트의 원조’로 꼽는다. 당시 시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홍명희가 여성문제에 깨어 있었다는 것이다. 홍명희는 마거릿 생어, 에드워드 카펜터를 언급하며 ‘일부일처제’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고, 올랭프 드 구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등을 언급하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식인종으로 언급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언급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즉 홍명희가 책을 통해 페미니즘의 역사를 꿰고 있었고, 그 내용에 공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채호, 혁명을 꿈꾼 독서가의 길 홍명희와 달리 신채호는 ‘일목십행(一目十行)’의 독서법을 추구했다. ‘한 번에 열 줄을 읽는다’는 뜻처럼 그는 속독을 즐겼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책을 열독한 사람처럼 책의 내용을 모두 파악했다. 한글학자 이극로는 신채호가 “책을 하나 손에 들면 남 보기에는 책장을 헤는 것과 같이 설설 넘긴다. 그러나 끝장까지 넘기고 책을 덮으면 그 책의 내용을 열독한 사람처럼 이야기를 한다”(45쪽)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책을 봅니다. 노역에 종사해야 해서 시간은 없지만 한 십 분씩 쉬는 동안에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귀중한 시간을 그대로 보내기 아까워서 조금씩이라도 책 보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44쪽) 신채호가 뤼순 감옥에 갇힌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처럼 그는 감옥에서도 책 읽기를 멈추지 않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책 읽기를 위해 영어를 배우기도 했고,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과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영어 원서로 읽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나키스트 고토쿠 슈스이와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책도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28년 12월 13일 다롄 지방법원에서 2차 공판이 열릴 때였다. 여기서 신채호는 언제부터 아나키즘에 ‘공명’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신채호는 《황성신문》에 근무하고 있던 1905년경에 고토쿠 슈스이의 《장광설》을 읽으면서 아나키즘에 공명하기 시작했다고 답변했다.”(61쪽) 신채호는 책을 통해 얻은 결과를 늘 글로,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의 사상은 강렬한 민족주의에서 차츰 ‘약자들의 연대’를 주장하는 아나키즘으로 바뀌어갔다. 엘리트주의에서 민중주의로 바뀐 셈이다. 이후 그는 혁명가의 길을 걸었고 감옥에서 삶을 마감했다. 신채호의 삶을 보건대, 신채호야말로 혁명을 꿈꾼 전형적인 독서가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김구, 책 읽기와 삶이 분리되지 않은 독행일치의 혁명가 때론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이 말은 김구에게 딱 알맞은 말인지도 모른다. 김구는 책 읽기와 삶이 분리되지 않은 독행일치(讀行一致)의 독서를 추구했다. 김구는 책을 읽었으면 그 내용을 늘 실천으로 옮겨온 사람이었다. 그 누구보다 독서와 실천이 한데 어우러진 삶을 살았던 이가 김구였다. 《백범일지》가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자서전인 《백범일지》는 흥미롭게도 김구의 독서 여정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1896년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로 일본인을 살해한다. 그 뒤 사형 선고를 받고 인천 감옥소에 갇혔다. 여기서 김구는 자신의 인생 책 《태서신사》와 마주한다. 프랑스혁명부터 보불전쟁까지 19세기 유럽 역사를 서술한 《태서신사》는 1880년에 로버트 맥켄지가 쓴 《The 19th Century》를 번역한 책으로, 부국강병의 방법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태서신사》는 김구뿐만 아니라 박은식, 서재필, 안중근, 이승만 등도 읽은 당대에 큰 영향력을 끼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김구는 배외사상인 위정척사 사상을 버리게 되었고, 탈옥 후 16년여 동안이나 교육운동에 헌신했다. 감옥에서 읽은 한 권의 책이 그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구는 청년 시절 동학농민운동과 계몽운동에 참여했고,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해방 이후에는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남북협상에 의한 통일정부를 수립하려 애쓰다가 암살을 당했다. 이런 그의 삶에는 늘 책이 있었고, 실천하는 정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혜석 VS 정칠성, 자유주의 여성해방론 VS 사회주의 여성해방론 책에는 식민지 조선의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나혜석을 조선 최초의 페미니스트 중 한 명으로 조명하고 있다. 나혜석은 일본 유학 기간에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페미니스트로 자각했다. 특히 일본의 페미니즘 잡지라고 할 수 있는 《세이토》는 나혜석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나혜석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에게 《세이토》는 가부장제에 맞설 수 있는 지적 기반의 원천이었다. 김일엽 또한 《세이토》에 영향을 받고 국내로 돌아와 《신여자》란 잡지를 펴내기도 했다.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온 나혜석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불온한 글쓰기를 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나혜석에게 또 하나 영향을 미친 책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이었다.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는 당시 여성들에게 ‘집 문을 박차고 나온 여성’, ‘가부장제에 저항한 여성’으로 상징화되었고, 이는 나혜석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약혼까지 한 나혜석에게 노라의 이야기는 가슴 깊이 와닿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혜석은 소설, 시, 그림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라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노라의 해방은 개인주의적 자각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노라는 눈보라 치는 날 밤에 남편의 집을 뛰쳐나오지요. 이후 노라는 어디 가서 무엇을 먹고 살아가겠습니까. 길거리에 나가 굶어 죽고 얼어 죽는 ‘해방’은 과연 진정한 해방일까요? 그러니 경제적인 해방을 이루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162쪽) 정칠성은 나혜석에게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나혜석이 자신의 모델로 삼았던 노라를 ‘개인주의적인 자각’에 지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정칠성은 ‘경제적 해방’이야말로 진정한 여성해방이라고 말한다. 노라로 상징되는 중산층 여성들의 고민을 넘어 무산계급 여성들까지 포괄하는 여성해방을 주장한 것이다. 즉 정칠성은 자유주의 여성해방론과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분명히 구분한 뒤 후자를 택하는 입장을 보였다. 바둑을 잘 두는 기생으로 유명했던 정칠성은 차츰 혁명가로 변신한다. 그 과정에 늘 책이 있었다. 책은 정칠성에게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부여했다. 조선의 여장부가 되어볼까 하고 말을 타던 10대의 정칠성과 현해탄을 오가며 새로운 사상을 배웠던 20대의 정칠성, 그리고 여성운동가로 가부장제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던 30~40대의 정칠성. 그 단계마다 정칠성은 책을 손에 쥐고 있었고, 책에서 배운 내용을 현실에 구현하려고 애를 썼다. 이 책은 그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정칠성의 삶을 ‘혁명을 꿈꾼 독서가’ ‘사회주의 여성해방가’로서 되살려놓는다. 엘렌 케이의 독자들, 조선의 페미니스트 엘렌 케이는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페미니스트였다. 그가 1900년에 쓴 《어린이의 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했고, 식민지 조선에도 알려져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나혜석, 김일엽, 박원희, 최영숙을 들 수 있다. 나혜석과 김일엽은 엘렌 케이의 연애론에 영향을 받았는데, 엘렌 케이의 사상을 소개하면서 자유연애론을 펼쳤다. 새로운 성도덕과 봉건적 가족제도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의 글들은 사랑 없는 결혼의 잔혹함에 시달리고 있던 식민지 조선의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탈출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렇듯 나혜석과 김일엽은 엘렌 케이의 연애론을 가부장제에 균열을 가하는 급진적인 사상으로 재해석해 밀어붙였다. 사회주의 여성해방운동을 펼쳤던 박원희 또한 일본 유학 시절 접한 엘렌 케이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엘렌 케이의 모성주의에 자극을 받은 식민지 조선의 여성운동가들은 모성보호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박원희였다. 1920년대 중반쯤 되면 과격한 노동, 장시간 노동, 비위생적인 설비 등으로부터 모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박원희는 출산을 앞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제도와 복지시절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를 위해 박원희는 소련의 모성보호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산모에게 한 달간 유급 출산휴가와 육아휴가를 보장하고 임부상담소, 산아원, 탁아소를 마련하자는 게 박원희의 주장이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박원희는 1928년 서른한 살의 나이로 눈을 감으면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최영숙은 엘렌 케이를 동경하여 아예 스웨덴으로 유학을 간 경우였다. 아쉽게도 최영숙이 스웨덴에 도착했을 때는 엘렌 케이는 사망한 뒤였다. 스톡홀름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최영숙은 졸업 뒤 조국에 공헌하기 위해 조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를 불러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5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엘리트였으나, 조선에서는 그가 일할 곳이 없었다. 결국 최영숙은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서대문 근처에서 콩나물과 배추 등을 파는 일을 하다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영양실조 끝에 귀국한 지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식민지 조선을 뒤흔든 비밀독서회는 어떤 책을 읽었나? 일제강점기는 소위 ‘불온한’ 책을 읽고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야 하는 시대였다. 그럼에도 비밀독서회는 몰래 모여서 책을 읽고 행동함으로써 식민지 조선을 뒤흔들었다. 이처럼 꾸준히 체제에 균열을 가한 비밀독서회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함께 모여 책을 읽는 회독(會讀)에서 나왔다. 회독은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하나의 책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며 의견을 나누는 공동체적 독서를 말한다. 홀로 책을 읽는 묵독(默讀)과 달리 구술문화에 바탕을 둔 독서법이다. 1910년대 무단통치의 침묵에서 벗어나 다시 웅변과 토론의 시대가 열리면서 회독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비밀독서회의 책 읽기는 식민권력이 금지한 영역을 횡단하는 월경(越境)의 독서였다. 이들은 은밀하게 모여서 일제가 불온시하거나 금서로 처분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밀독서회는 금서 유통이 이루어지는 주요한 경로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비밀독서회에서는 주로 사회주의와 관련된 급진적인 책을 읽었다. 사회주의가 곧 식민지 조선의 저항문화였고, 비밀독서회 멤버들이 원하던 지향점이기도 했다. 교사로서 대구사범학교 비밀독서회를 이끌었던 현준혁도,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멤버였던 이현상, 조두원도, 광주에서 비밀독서회를 조직했던 장재성도 사회주의를 꿈꾸었고 그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 193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면 한글로 된 책을 읽을 수조차 없었다. 일제가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중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에 걸쳐 중등교육 과정을 이수한 이들이 제일 큰 피해자였다. 이들은 학교에서 교련조회, 신사참배, 동방요배 국기게양식, 시국강화, 황국신민체조 등의 의식을 강요받으며 철저하게 일본인이 되기를 교육받은 세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어로 작성된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자체가 ‘불온’이자 ‘저항’이었다. 이 시대의 비밀독서회였던 상록회의 독서 목록을 보면, 그 이전의 비밀독서회가 읽었던 책과 상당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이 주로 읽은 책은 이광수, 심훈 등이 지은 소설책이나 역사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보면 한글을 빼앗겨버린 세대의 책 읽기를 잘 보여준다., 2021-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