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자가 아닌 일상 사유자, 이성민의 '인생론 노트'
일상에서 사라진 모험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아름다운 삶을 위한 작고 소소한 철학의 힘
이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모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모험은 왜 중요한가. 모험만큼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험을 통해 ‘이야기’가 생겨나며, ‘이야기’는 본능과 거리를 두려는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저자 이성민은 ?철학하는 날들?을 통해 우리 삶에서 모험이 사라진 이유를 사유하고, 모험을 살려 낼 방법을 모색한다. 그가 펼쳐 보이는 사유는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 편의 ‘인생론 노트’다.
도식적 인용이 남발되는 요즘, 사유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일상의 모험
이성민은 자신의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사유해 온 철학자다. 난해한 해외 이론이나 개념을 도식적으로 인용하지 않고 자신의 사유를 조화롭게 풀어놓는다는 점이 미덕이다. 일상의 ‘모험’으로 여행이 지니는 의미, ‘용기’의 정의와 유용성, ‘취미’의 재정의, ‘나이 듦’의 가치,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 온전한 인간을 길러내는 과정, 건설적 토론장으로 기능하는 광장의 의의 등 일상에서 경험하는 문제에 얽힌 철학적 사유를 그는 이 책에서 잠잠하게 풀어낸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는 일상의 문제를 섬세하게 바라보려는 사유자의 시선이 텍스트에 녹아들었다.
어느 것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일상의 가만한 생각들
일상에 치여 살다 보면, 작고 소소한 문제는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할 겨를 없이 흘려버린다. 삶의 수많은 문제를 진득하게 되짚는 힘도 사라진다. 사유의 소진을 ‘일상의 함몰’이라 표현할 수 있다면, 한 번쯤 쉼표를 찍으며 사유의 힘을 다시 북돋는 이성민의 텍스트야말로 ‘일상의 함몰에 저항하는 내면의 몸부림’이라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가치로만 판단하는 유용성의 차원에 반대하다
철학이나 사유, 또는 예술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은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 요소는 아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걸까. 왜 사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걸까. 우리는 예술작품을 보며 정신과 마음의 ‘틈’을 찾는다. 그러면서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상의 사소한 문제를 되짚을 수 있는 ‘틈’을 얻는 것이다. 저자 이성민은 바로 그 ‘쓸데없는’ 것들이 우리의 일상에서 부족한 ‘틈’을 채우는 ‘문화적 세계’라고 말한다.
일상의 사유는 물음표에 수렴하는 사회적 대화이자 상상력이다
이성민의 사유는 단지 일상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만연한 사회문제에 대해 여러 철학자의 개념과 주장을 경계 없이 곁들이며 편안하게 조곤조곤 얘기한다. 그의 사유가 흘러가는 모양새는 인간의 삶, 나아가 사회의 구조와 닮았다.
이성민의 회의주의적 태도는 일상의 사유를 사회적 상상력으로 확장하는 데서 빛을 발한다. ‘원래 그렇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그게 아니거나 아닐 수도 있다고 자각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곧잘 어떤 대상을 ‘이해한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해’라는 단어는 언뜻 일방적이고 독점적이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대상을 이해하는 맥락이 달라진다. 이성민은 그렇게 오해로 빚어진 이해의 흐름에 제동을 걸어 사회적 대화와 상상력으로 환원한다.
단어 하나하나에 스민 섬세하고 감각적인 사유들
사유의 힘은 해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철학하는 날들?은 모든 가능성을 상상하려 하는 ‘열린 대화’이다. 이성민은 일상의 주제들에 자신의 감각을 섬세하게 포갠다. 그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사려 깊고 편안하게 ‘대화한다’는 느낌이 든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어떻게 하면 여러 방면으로 대화할 수 있을지 방식을 찾는 데 열중한다. 그러다 익숙한 단어에서 낯선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섬세하고 예민하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이성민의 사유는 부지런하다. 지금껏 믿어 왔던 것들을 가만히 의심한다. 그렇다고 그의 사유가 결코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안다고 여기는 것에 마지막으로 다시 질문을 던져 어떤 것이 정말일까 방황하도록 속삭인다. 바로 여기서 ?철학하는 날들?의 의미가 두드러진다. 또 다른 가능성을 암시하거나 상상하도록,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에 독자 스스로 주체적인 상을 그려 내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