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 상상력으로 가닿은 리얼리즘의 심연
구병모 잔혹극의 서막을 여는 첫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은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발표한 단편소설을 묶어 출간한 첫 소설집이다. 개정판에는 2011년 출간 당시 수록하지 않았던 단편소설 「어림 반 푼어치 학문의 힘」이 포함되어 있다. 『고의는 아니지만』은 작가가 이후 발표한 작품들에 깃들어 있는 문제의식과 표현 방식, 즉 구병모라는 한 세계의 기원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각별한 ‘첫 소설집’이다. 출간 10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를 찾는 『고의는 아니지만』은 10년이라는 시간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만큼 현재적이다. 현재적이라는 표현에는 그때 그 문제가 지금도 여전히 문제라는 의미의 수동적이고 단순한 현재성이 담겨 있지 않다. 지난 10년 동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비교하며 지금을 반영하고 과거를 비춘다는 점에서 매일 새로워지는 현재성이자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 현재성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