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이 ‘오래전, 거기’의 삶과 죽음을 상상하는 일
묘지, 그 기록과 기억과 성찰의 공간을 거닐며
오랫동안 가슴에 품은 유명인들과 나눈 침묵의 대화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는 꽤 오래전부터 묘지 앞에 서면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곤 했다는 저자가 세계 곳곳에 있는 유명인들의 묘지를 작정하고 찾아다니며 쓴 '묘지 기행 에세이’이다. 프랑스를 위시한 영국, 스위스,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국가를 비롯해 중국, 베트남, 쿠바, 이란 등 유럽 외 국가까지 총 31곳의 묘지에서 무려 60여 명의 망자를 만났다. 당연히 미식과 명소 위주의 흔하디흔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여행기지만, 그건 더 깊은 이야기를 담기 위한 그릇에 불과하다. 저자는 여기에 인문학적 요소를 묵직하게 더했다.
작품이나 사상을 통해 저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그리하여 오래도록 가슴에 남게 된 유명인들의 삶과 죽음, 그들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까지 그 묘지 앞에서 책처럼 다시금 읽어내며 사색과 명상과 성찰의 시간을 갖고, 무덤 주인들과 침묵의 대화를 나눈 것이다. 그 과정들을 저자만의 화법과 시선으로 풀어내고, 직접 찍은 사진들을 곁들여 그날 그곳에서 느낀 감동과 소회를 생생하게 전한다. ‘묘지’를 매개로 새롭게 써내려간 ‘묘지인문학 여행 에세이’인 셈이다.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문학 에세이를 기다리던 독자들과 신선한 테마 여행 에세이를 기다리던 독자들, 모두를 충족시킬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