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여성성’과 ‘섹슈얼리티’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문학평론가 심진경의 ‘여성’과 ‘문학’ 혹은 ‘여성과 문학’에 대한 고찰
모든 자명한(혹은 자명해 보이는) 개념들이 그러하듯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과 ‘문학’ 혹은 ‘여성과 문학’ 같은 개념들 또한 겉보기만큼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개념은 역사적이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왜 ‘여성’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통시적, 공시적 고찰을 통해서만 ‘여성’은 유동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 「서문」 중에서
오랫동안 여성문학의 주제를 천착해왔던 심진경의 새 저서가 출간됐다. 심진경은 등단 이후 지금까지 ‘여성’과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를 자신의 비평 중심에 두고 한국문단 대표 여성 문학가로 활동해온 한국 대표 여성 문학평론가다. 서문에서도 밝혔다시피 이번 책에서 심진경은 문학이라는 개념 형성과정이 여성이라는 개념의 탄생과정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사실을 흥미로운 점으로 꼽았다. 여성은 창작자가 내면을 서사 전면에 내세울 수 있게 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고, 낭만적 사랑의 서사를 통해 일상적이고 가장 내적인 삶의 영역을 근대문학의 무대로 세우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근대문학의 형성은 어떤 점에서 여성의 사적인 가정생활과 비밀스러운 내면에 대한 탐색과정과 맞물려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심진경은 ‘여성’과 ‘문학’ 혹은 ‘여성과 문학’을 첨예하게 고찰하기 위한 첫번째 작업으로 ‘여성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해답을 찾기 위해 서사화된 제1세대 여성작가들의 여성문학이 그럼으로써 어떻게 문학 제도 바깥으로 밀려났으며, 이후 ‘여류문단’의 형성과정 속에서 ‘여성성’과 ‘모성성’을 원리로 하는 여성문학이 어떻게 소설적 통치의 한 결과로서 형성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과 ‘문학’이 결합하는 가운데 여성성과 모성성이 어떤 사회적, 심리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사회 변동이 급격해지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 속에 등장한 ‘여성’은 어느 면에서는 새로움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면에서 볼 때 당대 사회의 어둠이자 그늘이었다. 예를 들어, 신여성이 모던걸로, 모던걸이 다시 ‘못된걸’로 변모하는 과정이나 낡은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이 공존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모순과 문제를 ‘자유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 등은 ‘여성’이 그리 간단하지 않은 명제임을 확인시킨다. 최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여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그러한 모순의 봉합과정을 알 수 있듯이,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야말로 그런 여성을 만들어낸 당대 사회의 의식적, 무의식적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