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열 번째 책 출간!
■ 이 책에 대하여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열 번째 소설선, 손보미의 『우연의 신』이 출간되었다. 2009년 등단 이후 <한국일보문학상>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소설가로서 역량을 인정받았고, 2017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례적인 젊은 작가 수상이라는 찬사를 들은 손보미가 내놓은 이번 작품은 2018년 4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발표한 것이다. 전 세계 한 병 남은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에 의해 계속 변화하며 어떤 행복이나 불행도 끝없이 지속되지 않을 뿐더러 그 안에서 계속 변화한다는 진실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경찰청에서 3년을 근무한 뒤 민간 조사원이 된 ‘그’는 의뢰인의 시각에 맞춰 그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족스럽게 찾아내주는 까닭에 그 분야에서 대체 불가한 자원이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건 자신이 ‘포화 상태’ 직전이라고 판단될 시 모든 것을 놓고 과감하게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리-프레시라고 부르며 철저히 지켰다.
방콕행 여행을 하루 앞둔 저녁, 그는 자신의 주 고객 중 하나인 대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에게 한 의뢰인을 꼭 만나줄 것을 부탁 받고, 그를 만나러 나간다. 물론 어떤 일인지에 관계없이 정중히 거절을 하고 자신의 여행 일정에 맞춰 출국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게 되었고 결국은 7년 동안 한 번도 취소해본 적 없는 자신의 휴가 일정을 뒤로하고 프랑스로 출국한다.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아빠에게 보내진 ‘그녀’는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 한 에이전시를 거쳐 예술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헤비 스모커에다 동양인인 그녀에게 동료들은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내비쳤고, 그렇게 일하던 그녀에게 고등학교 동창인 안영시-알리샤가 유품을 남겼으니 그것을 가지러 와주길 원한다는 편지를 받는다. 고등학교 시절 딱히 친하지 않았던 안영시-알리샤가 갑자기 왜 유품을 남겼는지 알 수 없는 그녀는 다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했던 프랑스로 가보기로 한다.
‘그’가 의뢰인에게 받은 부탁은 전 세계 한 병 남은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을 찾아와 달라는 것이었고, 안영시-알리샤가 ‘그녀’에게 남긴 유품은 바로 그가 찾아와야 하는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이었다. 그렇게 그와 그녀는 프랑스 리옹에서 만나게 되고, 그는 생각보다 쉽게 화이트 라벨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포기하고 의뢰인에게 실패를 선언한다. 사실 그 둘은 프랑스로 오기 전 공통적으로 죽음을 간접 경험했다. ‘그’는 티브이를 통해 그 광경을 ‘보았고’ ‘그녀’는 굉음으로 그 사건을 ‘듣게’ 되었다. 이 일은 그들에게 죽음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고, 이 일로 인해 그 둘은 새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새로이 생겨난 이 마음들은 결국 자신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입해보려는 마음을 갖게 해주었고, 이로 인해 그와 그녀는 예기치 않은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손보미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실과 허구를 섞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혼란시킴으로써 소설적 재미를 풍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소설에서 ‘우연’이라는 주제가 함축하고 있는 생의 신비를 포착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에 의해 소설의 켜켜이 숨겨둔 우연적인 사건들로 긴장감을 더욱 갖게 하고 있다. “현실이라는 큰 전제 안에서 소설(허구)과 소설 아닌 것(사실)의 접점이야말로 우연의 한 양상처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김나영) 우연히 마지막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을 찾아오는 일을 맡게 된 ‘그’, 이름을 착각한 한 선생님 때문에 우연히 프랑스로 다시 돌아온 ‘그녀’. 그러나 이 우연한 사실로 두 사람이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거나 다른 행운의 이야기로 더 이상 진전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 우연은 또 다른 우연을 낳고, 그 우연은 또 다른 행로로 그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현실은 누구에게나 확고부동한 것으로 놓여 있지 않고 그것을 사는 사람에 따라서 변화하는 상태로 있”(김나영)을 뿐이다. 그 우연의 기로에 ‘그’와 ‘그녀’가 서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