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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 사이세이 시선
註釋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 1889~1962)는 시인,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로서 여러 방면에서 문학적 역량을 발휘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자이다. 그의 시는 단카(短歌)나 하이쿠(俳句)와 같은 전통적인 시가(詩歌)의 고전적인 정취와 구어 자유시의 형식적 활달함이 서정적 내용과 결합된 독창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생활자의 삶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으며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것을 취하더라도 매 순간 다양하게 변주되는 감정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대체로 시형이 짧으며 응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난삽하거나 난해하지 않다. 사이세이의 14개 대표 시집에서 104편의 시를 뽑아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고향은 멀리서 그리워하는 것

《서정소곡집(抒情小曲集)》(1918), 《푸른 물고기를 낚는 사람(靑き魚を釣る人)》(1923), 《참새집(鳥雀集)》(1930)은 사이세이 특유의 서정이 흘러넘치는 시집이다. 사생아로 불우하게 자란 유년 시대의 비극과 애환, 문학을 향한 꿈을 안고 상경한 이후 겪게 되는 도시에서의 고단한 삶과, 망향을 노래했다. 도쿄에서의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방탕하게 살아가던 사이세이가 육체는 타락했어도 정신만은 고결하기를 바라는 격절의 정서를 표출한 것이다. 이 시집들의 간행으로 사이세이는 ‘과거의 서정시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진귀한 날카로움’이라는 상찬을 받으며 다이쇼(大正) 시단의 큰 주목을 받았다.


고향은 멀리서 그리워하는 것

그리고 쓰리고 아프도록 노래하는 것

설령

초라해져 타향에서 빌어먹게 될지라도

돌아갈 곳이 아니네

혼자 도시의 노을을 보고

고향 생각에 눈물짓네

이 마음 품고서

머나먼 도시로 돌아가고 싶네

멀고 먼 도시로 돌아가고 싶네

- 〈소경이정(小景異情)〉일부 , 《서정소곡집(抒情小曲集》


입말로 구축한 일상 속의 순간들

값싼 하숙방을 전전하며 곤궁한 생활을 이어가던 사이세이는 뜻이 맞는 문인들과 시사(詩社)를 결성하거나 동인지를 간행하는 등 시인, 편집자, 발행인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 갔다. 20대 중반부터는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竜之介) 등과 친분을 이어가며 문단의 중심에 섰다. 이 시기 사이세이는 이전의 응축된 문어체에서 벗어나 호흡이 긴 구어체로 접어들었다.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쓴 시편을 모은 것으로 《사랑의 시집》, 《쓸쓸한 도시(寂しき都会)》(1920), 《별에서 온 사람(星より來れる者)》(1922), 《시골의 꽃(田舎の花)》(1922), 《망춘시집(忘春詩集)》(1922), 《고려의 꽃(高麗の花)》(1924) 등을 꼽을 수 있다. 사이세이 자신이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 속에 촉발되는 감정의 복잡한 동요를 응시하고 침잠하는 방법”을 ‘시’라고 정의하고 있듯이 이 시집들의 시는 사실적인 경향을 띠지만, 상념의 깊이를 그대로 포착하며 일상 속의 순간들을 구축했다.


오고 가는 사람의 모습도 모두 물 위에 비치고

고요히 사라져 간다

연기는 여전히 피어 오른다

아이의 엄마인 듯한 여자가

푸른 파 한 다발을 씻고 있다

모든 것이 고요한 빗속에 다리의 그림자가 되어 있다

- 〈도시의 강(都會の川)〉 일부, 《별에서 온 사람(星より來れる者)》


사이세이 문학의 변혁기

관동대지진,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죽음, 친구 사쿠타로와 가족과의 사별 등의 체험이 녹아 있는 시집 《학(鶴)》(1928)의 서문에서 사이세이는 ‘자신에게 고착된 무엇인가를 격파하는 기분으로 부딪쳐 가고자 한다’고 선언한다. 시인으로서 과거의 시업과 구분 짓겠다는 이러한 의지는 장절한 자연의 발견과 경이로움에 대한 공감이 준열하게 드러나는 《철집》(1932)을 비롯해 조선과 만주를 여행하고 난 후 쓴 시를 모은《하얼빈시집》(1957), 그리고 생애 후반부의 시집이라고 할 수 있는《어제 와 주세요》(1959)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의 시집에는 가루이자와(軽井沢)에 별장을 짓고 도쿄의 거처를 옮기며 변화를 추구했던 사이세이의 모습, 1930년대 중반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황, 패전 이후의 시대적 전경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검을 이고 서 있는 험한 산들,

높은 산은 검을 지키며 줄지어 서 있다.

검은 아주 오랜 시간에도 녹슬지 않고

검은 독하게 거친 쇠를 달구어 두드려

말없이 우뚝 솟아 있다.

검게 갈라진 산 주름에,

희미한 먼지를 더해,

아주 검은빛으로 빈틈없이 누군가와 칼을 맞대고 있다.

그 소리 울려 퍼져 들려온다.

- 〈검을 가진 사람(剣をもつてゐる人)〉 전문, 《철집(鐵集)》


단행본 기준 150권 이상의 저서를 간행했으며, 그 가운데 80여 권의 소설집과 20여 권의 시집을 펴낸 문호 무로 사이세이. 이번 시선집으로 다이쇼, 쇼와 문단에 남긴 무로 사이세이의 족적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