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서 야만을, 야만에서 문명을 보다
인류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의 원주민인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카와이브족을 찾아가 그들 사회와 문화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하지만 양자오 선생은 이 책을 특정 장르로 분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슬픈 열대』에는 레비스트로스의 깊은 인류학적 사고가 반영된 수많은 학술적 토론이 담겨 있지만, 일반적 의미에서의 학술서라 보기는 어렵다. 학술서처럼 전혀 건조하거나 무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아름답고 실험적인 문장이 가득하지만, 그 수준 높은 성취로 볼 때 일반적인 산문도 아니다. 여행기의 요소가 농후해 일종의 기행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책머리에서 단호하게 일반적인 여행기 쓰기와 선을 긋는다. 부단한 축적과 기록에 기반을 둔 분석, 추론, 통찰, 단언으로 이루어진 그의 글을 여행기라고 보기는 당연히 힘들다.
레비스트로스는 왜 이렇게 모호한 형식으로 글을 썼을까? 바로 인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줄곧 인류 사회와 문화에는 보편적 구조가 있다고 말하며 그 구조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다양성과 특수성을 부정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탐색을 게을리하지도 않았다. 즉 “거짓된 보편, 폭력적으로 왜곡된 (표면상의) 보편을 거부하면서 특수성의 원시림으로 나아가지만, 재차 특수한 것에서 보편적 구조와 규칙을 도출”하고자 하며 “문명 속에서 야만을, 야만 속에서 문명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슬픈 열대』가 출간된 후 약 30여 년 동안 레비스트로스가 인류학뿐 아니라 서구 학술계에서 절정의 위상을 점한 까닭이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전혀 일방향적이지 않았다. 문명과 야만을 구분해 차별의 근거를 만드는 대신 외딴곳의 낯선 문화뿐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 문화까지도 모두 이문화로 인식하고 다양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면서 거기에서 공통된 구조를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가 이러한 구조주의 개념을 정립해 가는 여정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브라질로 향하는 긴 여정과 원시 부족을 접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과 경험이 분석적인 인류학적 통찰과 나란히 서술된 이 책은 독자들을 당황케 할 수도 있지만, 인류의 일원으로서 우리 자신과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해 줄 거라고 찬찬히 일러 준다. 이 책에서 양자오 선생은 레비스트로스가 『슬픈 열대』를 쓰게 된 시대적 배경과 맥락을 짚고 텍스트의 구조를 어떻게 짜 나갔는지 흥미진진하게 서술해 나간다. 『슬픈 열대』를 읽고자 하는 독자들은 이 책에서 새로운 관점과 접근법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