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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규 시선 초판본
고석규
出版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05-15
主題
Fiction / World Literature / Korea
Literary Collections / General
Poetry / General
ISBN
9791130459349
URL
http://books.google.com.hk/books?id=um3QDAAAQBAJ&hl=&source=gbs_api
EBook
SAMPLE
註釋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고석규의 시는 1950년대 우리 시를 논의하는 일반적 기준인 전통파(서정파), 언어파(실험파), 현실파의 시적 경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독특한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의 시는 당대의 여느 시인들이 전란이 할퀴고 지나간 초토화된 현실의 충격으로부터 도피하거나, 언어의 왜곡을 통한 풍자와 직접적인 현실 대응 등의 외면 지향성을 드러낸 것과는 달리, 전후 현실의 참담함과 절망적 상황을 내면 의식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시적 면모를 보인다. 전후 세대 시들은 불행한 역사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폐허를 헤집고 다니면서 그래도 무언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찾는 노력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화전민 의식을 갖고 새로운 경작지를 개척하고자 했지만, 이러한 개척 의지는 막연한 지향점에 불과했으므로 대부분의 시인들은 부정·소외·단절·퇴폐·절망 등의 자기 방기적(放棄的) 성격을 드러내기에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고석규의 시는 이와 같은 50년대의 정신사적 흐름 속에서, 폐허와 상실의 정서를 관념적·추상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체험적 육화를 통한 리얼리티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지성과 감성을 하나로 종합하는 체험의 가능성, 즉 종합적 체험의 추구를 현대시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의 시는 1950년대 비평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새롭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신사적 궤적이 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커다란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관념의 영역 속에서 모더니티의 탈을 쓰고 실험적 기법을 동원해 보거나, 전통적 서정시의 영역 속으로 함몰해 버린 일군의 시인들과는 달리, 기법적·소재적 차원이 아닌 인간의 실존적 차원에 관심을 기울여 존재 탐구의 시를 썼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비평들이 어느 정도 외래 지식의 원론적인 수용 및 그 적용에 관계될 수밖에 없는 다소 인위적인 글쓰기 방식이라면, 그가 쓴 시들은 오히려 시 장르 자체의 본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1950년대의 현실적 체험과 아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에세이적 글쓰기로 명명되는 그의 비지시적 언어관은 상징과 비유 등의 수사법을 기교의 차원에서 이해하지 않고 존재론적 차원에서 해명하고자 한 것으로, 그의 비평가적 위상은 바로 시정신에서 발현되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점을 볼 때 50년대 시사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그의 시는, 50년대 비평사를 새롭게 쓰는 데는 물론 50년대 문학사의 방향성을 수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전기(轉機)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석규는 1950년대, 그 황폐하고 절망적인 시절을 이겨 내지 못하고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1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기를 통해 다섯 권 분량의 책을 묶어 낼 만큼, 그의 활동은 왕성했고 문학적 역량 또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우리 현대문학사의 지형도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항간의 말들은 결코 과장된 평가로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문학은 저 신산했던 50년대가 저물면서 끝이 났지만, 그가 남긴 문학적 유산과 정신은 그대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직은 그의 시 세계가 ‘여백’으로 남아 있지만 그 속에 ‘존재’의 의미가 더욱 구체적으로 채워진다면, 앞으로 1950년대 우리 시 문학사를 새롭게 기술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생전에 꿈꾸었던 ‘여백의 존재성’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