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가? 생물학적으로는 생명이 완전히 소진되는 것, 모든 육체적 활동이 정지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고대로부터 인간에게 두려움으로 각인되어 온 데는 좀 더 추상적이며 사회학적인 이유가 있다. 죽음 이후엔 자신이 관여하고 소유했던 일체의 유무형의 존재들과 격리된다는 돌이킬 수 없는 고독이 있다. 그 때문에 인류는 현재까지도 여러 종교를 창조해 영생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음은 인간이 죽어야 알 수 있는 살아서는 풀 수 없는 미결 과제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이따금 떠올린다. 대개는 현실도피적인 경우가 많지만 자기 각성을 위한 경우도 있다. 문학 속에서의 죽음은 특히 그러하다.
자만시(自挽詩)는 나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실제 불가능한 상황을 전제로 한 문학이다.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유언이라고 한다면, 자만시는 이와 달리 죽음의 과정과 그 이후를 언어를 통해 체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남북조시기의 시인들이 만가에서 자신의 죽음을 노래하면서 ‘자만시’란 문학 양식이 탄생되었는데, 조선시대의 시인들도 적지 않은 자만 시편을 남겼다. 자만시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나 명상시로 기능하는 엘레지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한 가지 특징을 갖는데 자신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점이다.
한국 최초의 자만시는 현존 자료로 볼 때 조선시대 남효온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남효온의 <스스로 쓴 만시 4장, 점필재 선생께 올리다>는 중국의 도연명과 진관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지만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하다. 작품 중 입관 후의 정경을 묘사한 부분은 다음처럼 매우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땅강아지와 개미가 내 입에 들어오고,/ 파리 모기떼 내 살을 빨아대네./ 새로 꼰 새끼줄로 내 허리를 묶고, / 해진 거적으로 내 배를 덮는구나./ … / 상여꾼은 늙은 뼈 묻고,/ 열 달구로 소리 맞춰 무덤 다지네./ 이 때에 나는 어떠한 마음이던가, /혼돈처럼 일곱 구멍이 막혔네.” 이 시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달관 외에도 비극적 인식이 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데, 이 점이 도연명의 자만시와 구별된다. 특히 이 무렵에는 남효온만이 아니라 김종직, 김시습 등도 함께 도연명 시를 계승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이들의 작품에 담긴 현실 비판은 모두 세조의 왕위 찬탈 문제와 무관하지 않은데, 남효온의 자만시에 담긴 “하는 짓 거칠어 미친놈 소리 들은 일.”이란 한탄도 단종의 어머니 소릉(昭陵)의 복위(復位)를 상소한 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또 다른 예로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 비분한 감정을 실어 지은 자만시가 있다. 홍언충의 작품이 이에 속하는데, 갑자사화로 유배지에서 남긴 <유곡역관>은 임종시에 가깝다. “맑은 바람 부는 밤 외로운 관사에 누워 있다가,/ 늙은 홰나무 옆에서 막걸리 세 잔을 마시네./ 이번 길 살아 돌아오기는 힘들지니, /모든 일을 유유히 하늘에 부치노라.” 비슷한 예로 기묘사화를 겪은 기준의 자만시도 죽음을 예감한 고독이 주 정서를 이룬다. 사화기 시인들의 작품은 대체로 짧으며 자만시의 주 요소라 할 수 있는 상장례가 생략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실제로 죽음이 임박해 왔음을 직감한 뒤 씌어진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죽음에 맞서 초연한 자세를 잃지 않는 자만시도 있다. 김상연의 <자만>은 “매화”와 “살구”를 대비해 죽음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늙은 홀아비 신세 담박하기가 중과 같고,/ 고루하니 어찌 멀리 있는 벗 찾아온 적 있으랴./ 쇠한 눈이라 일찍 온 봄에 더욱 놀라니,/ 매화 이미 졌지만 살구꽃 아직 남았기에.” 작자는 죽음을 앞두고 찾아온 봄에 놀란다. 그리고 살구꽃 여전함이 주는 여운은 깊다.
한편 조선시대 자만시에서 가족, 그 중에서도 특히 부모님의 죽음은 자주 언급되는 문제였다. 이민보(李敏輔, 1717-1799)가 노년에 자만시를 짓게 된 계기는 60년 전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셨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가 20대 초반일 때 생부 이양신(李亮臣)과 생모 평산(平山) 신씨(申氏)가 연이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또 이명오(李明五, 1750-1836)는 사도세자(思悼世子) 문제로 영조의 노여움을 사 죽은 아버지 이봉환의 억울함을 기록하기 위해 12수의 연작 자만시를 쓰기도 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켈레비치(Vladimir Jankélévitch)는 죽음에 대해 타인의 죽음인 3인칭의 죽음과 부모의 죽음인 2인칭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죽음인 1인칭의 죽음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선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 못하다가, 2인칭의 죽음인 부모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1인칭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게 된다고 한다. 이민보와 이명오의 자만적 작품은 부모님의 죽음이란 2인칭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인 1인칭의 죽음을 예감하기까지의 경로를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소설가 김훈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글에서 죽음은 가벼우니, 장례 절차도 단순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또 웰다잉 전도사 최철주가 내세운 웰다잉 십계명 중에는 “삶의 주체는 ‘나’이며 죽음도 예외는 아니니 직접 준비하자.”가 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 역시 허례허식과 의례적 수사로 장식된 타인을 위한 죽음을 마뜩치 않아 했다. 유인배(柳仁培, 1589-1668)는 장례 날 만장이 많은 것을 영예롭게 여기고 만시가 없는 것을 수치로 여기던 당대의 풍습에 불만을 가졌다. 그래서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 억지스러운 내용이 들어가는 것보단 스스로 쓰는 편이 낫다고 여겨 자만시를 썼다. 그는 후손들에게 만시 대신 자만시를 무덤 귀퉁이에 넣어두라고 유언을 남겼다.
여러 자만시에서 보여지듯 죽음은 이전까지 경험할 수 없던 절대 고독이다. 자신의 죽음을 가정하는 ‘자만시’라는 독특한 화법은 삶의 강한 긍정일 수 있다. 자만시를 쓰면서 이제까지, 혹은 앞으로의 자기 삶에 있어 불필요한 부분을 반성하고 줄여 나가는 것, 삶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것, 이것이 자만시 성립 배경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우리나라 자만시의 계보를 따라 대표작들을 소개하고 있는 동시에 현재의 독자들에게는 임사체험의 장도 될 수 있을 것이다.